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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유게시판

나는 노년의 삶을 알지 못한다. 언젠가 평범한 노인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해 꽤 긴 인터뷰를 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. 그들 중 몇몇은 백 살쯤 된 이들이었는데 그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과 그렇게 오랫동안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. 그 경험은 나를 조금 바꿔놓았다. 이후론 길 위의 노인들이 조금 달리 보였다. 시시때때로 ‘나는 그들을 모른다’는 마음이 되었고, 그들이 왜 저런 모양으로 걷게 되는지, 왜 저런 식으로 말하는지,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. 그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이었다. 

JTBC 드라마 <눈이 부시게>는 청년의 마음으로 노년을 체험하게 한다. 스물다섯 혜자(한지민)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초능력을 가진 시계를 수백 번 되돌리면서 하루아침에 일흔여덟의 혜자(김혜자)로 늙어버렸다는 설정을 통해서다. 

혜자의 자아는 스물다섯 그대로이지만 이제 세계는 그를 거치며 전혀 다른 식으로 굴절한다. 노쇠한 몸은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. 아침마다 수많은 약을 챙겨 먹어야 약발로 겨우 신체를 유지할 수 있다. 세상 사람들은 나이, 노인, 노화과정에 대한 편견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다.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예의를 차리지만, 동시에 수치심도 인격도 없는 존재인 것처럼 타자화한다. 젊은이들은 신체가 노화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하고 비웃기 일쑤이며, 노인의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은 비웃음거리가 된다. 

혜자가 쇼핑몰에서 화재경보벨이 울려 다른 이들과 같이 혼비백산 탈출하려다가 맞닥뜨리는 상황은 서글프다. 노인은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정원이 정해진 생존의 엘리베이터에서 스스로 내려 마땅한 존재다. 정원초과 경보음이 울리는 엘리베이터에 계속 버티고 서 있으면 그의 살고 싶다는 욕망은 단지 추한 것이 된다. 갑자기 늙어버린 혜자는 뭇사람들이 발산하는 부정과 경멸의 에너지를 뼛속 깊이 느낀다. 

일흔여덟 김혜자의 몸에 스물다섯 한지민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‘늙음’에 대한 독백은 길 위 수많은 노인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. 이제 막 노년에 접어든 누군가의 마음, 혹은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하는 뭇노인들의 마음이란 저런 것이었을까?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.
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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